
이탈리아 도시 중 피렌체(Firenze, Florence)는 르네상스가 시작된 유서 깊은 도시이다. 문화 유적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들을 여러 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는 유네스코 문화 유적지이다. 선원근법을 창시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완성한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Duomo)를 포함한 주요 건축물과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앞에 놓인 미켈란젤로의 다윗 조각상뿐 아니라 거장들의 명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주요 미술관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이와 함께 피렌체에는 인본주의를 구현한 사실적인 형식으로 신앙의 내용을 담아낸 거장들의 작업으로 예배 공간을 구축함으로써 종교와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성당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을 들 수 있다. 이 성당에서는 지금도 예배가 실행되고 있어 르네상스 거장들의 명작을 감상할 수 있는 미적인 공간일 뿐 아니라, 종교의식이 이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예배 공간으로도 의미가 있다. 1279년에 도미니칸 신부들에 의해 신축되어 1420년에 완공된 이 성당 건축물의 세부 양식과 예술 작품들은 중세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전개되는 점진적인 과정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성당 내부는 지오토(Giotto), 브루넬레스키, 마사치오(Massaci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기를란다이오(Domenico Ghirlandaio),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바사리(Giorgio Vasari) 등의 거장들에게 의뢰한 작품들로 장식되어 르네상스 예술과 지성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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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이름을 따라 붙인 기차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흰색과 초록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독특한 양식의 성당 정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정문은 1470년에 르네상스 건축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가 하단의 중세 양식을 수용하면서, 상단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구현하여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파사드(façade)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예로 유명하다.(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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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3]
본당으로 들어가면 지오토의 초기 회화 작업인 <십자가에 달린 예수(Crucifix)>(c.1290-1295)가 본당 중앙에 매달려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도2) 중세 시기에 많이 다루어진 도상이지만, 지오토의 이 작업은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는 예수의 몸을 인간적으로 그려낸 첫 작업으로 평가된다.(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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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내부에는 후원자들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다수의 가족 예배당들(chapels)이 자리 잡고 있으며, 프레스코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조각 등의 다채로운 작업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편, 곤디 채플(Gondi chapel)의 제단에 걸린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Crucifix)> 조각상(c. 1410-1415)은 르네상스의 이상을 담기 위해 수학적인 인체 비례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잘 구현하고 있다.(도4)
이 성당의 여러 작업 중 미술사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업은 마사치오(Masaccio)의 <성 삼위일체(The Holy Trinity, c.1427)>이다.(도5)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도상으로 중세 이래 무수한 작가들이 다루었고, 이 성당 안의 다른 작업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 [도 6]
마사치오의 작업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뒤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근엄한 성부, 피 흘리는 예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비둘기 형상으로 상징되는 성령이 삼위일체를 제시하고 있다.(도6) 중세 시기 작업에서 성부는 보통 하늘에서 내려오는 손으로 암시되어 추상적인 존재로 제시되었던 것에 비하여, 마사치오는 십자가 뒤에 서서 죽어가는 아들을 지키고 있는 인간 아버지의 모습으로 성부를 묘사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늘어진 예수의 몸을 해부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상징적인 개념으로 제시하던 중세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형태로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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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8]
또한 이 작업은 브루넬레스키가 1415년에 고안한 선원근법을 적용한 최초의 회화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3차원의 공간을 평면에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수학적으로 고안된 선원근법은 사실적인 인물 표현과 함께 합리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을 구현하는 기초가 되었다. 관람자는 양쪽의 후원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면의 높이에서 올려다보게 되는데, 일점 원근법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성삼위일체와 그 위의 둥근 천장은 실제 공간과 같은 착시를 보여준다.(도7) 삼위일체가 제시된 공간은 자연스럽게 뒤로 들어가서 평평한 벽면이 마치 움푹 파여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러한 효과는 격자형 둥근 천정의 묘사에서 극대화된다.(도8) 이와 함께 성스러운 공간을 둥근 아치와 고대 그리스 원주 장식이 있는 기둥으로 구획 짓고 있어, 중세의 주제에 고대 그리스의 건축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도 9]
성삼위일체가 제시되는 구별된 공간 안에는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양쪽에 서 있다. 성스러운 공간 밖에는 이 작업의 후원자 부부가 양쪽에서 중앙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옆모습으로 제시되어 성스러운 주제와 세속적인 인물들의 공간을 구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도9)
본당 왼쪽의 세 번째 아케이드 제단화 자리에 그려진 <성삼위일체>는 1570년에 돌 벽으로 덮혀지는 일이 있었고 18세기에 복구하면서 발견되었다. <성삼위일체>의 하단에 그려진 해골이 누워있는 관 부분은 1952년 복구과정에서 발견되어 전체 작업이 온전하게 복원되면서 마사치오가 의도한 작업의 의미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 [도 10]
<성삼위일체> 하단에 죽음을 주제로 한 미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부분은 필멸의 인생을 언급하고 있다.(도10) 이 부분은 후원자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세속의 공간과 맞닿아 있어 인생의 궁극적인 종말에 대한 주제로 전환되는 지점을 제시하는 거장의 묘수를 보여준다. 더욱이 관 위에 누워있는 해골의 상단에 적힌 글은 인생이 유한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의 내용은 “나도 한때 당신과 같았다. 그러나 나처럼 당신도 [죽게] 될 것이다 (영문으로는 what you are, I was once; what I am, you will be의 의미).” 이 글은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어 예배를 드리러 오는 피렌체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적은 글이다. 눈높이 아래로 죽음의 이미지와 문구를 마주하고, 눈높이 위로는 <성삼위일체>를 올려다보며 이 제단화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죽음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종교적인 메시지를 명상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후원자들처럼 영생을 구했을 것이다.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는 인본주의로 전환되어가는 시기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인간적인 표현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선도적으로 구현하였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성공적으로 형식화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성서의 전통적인 주제와 인간의 한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보다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제시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captions
도1. The façade of the 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completed by Leon Battista Alberti in 1470.
도2. Giotto di Bondone, Crucifix, tempera on wood, 578 x 406 cm, 1290,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도3. Detail of Giotto di Bondone, Crucifix, tempera on wood, 578 x 406 cm, 1290,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도4.Filippo Brunelleschi, Crucifix, polychromed wood, 170 x 170 cm c.1412-1413, Gondi Chapel,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도5.Masaccio (Tommaso Guidi), The Holy Trinity, c.1425-1427, fresco, 667 x 317 cm,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도6.Detail of Masaccio, The Holy Trinity, c.1425-1427, fresco.
도7.Perspective diagram of The Holy Trinity, c.1425-1427, fresco.
도8.Detail shows the coffered barrel vault, Masaccio, The Holy Trinity, c.1425-1427, fresco.
도9.Detail shows the figures of the Virgin and Saint John the Evangelist, along with two donors.
도10. Detail shows the skeleton, Masaccio, The Holy Trinity, c.1425-1427, fresco,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