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를 받아 든 순간, 반 평균과 자신의 점수를 비교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키, 몸무게, 성적, 연봉, 집값 등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평균’이라는 잣대와 씨름합니다. 평균보다 높으면 안도하고, 평균 아래로 내려가면 불안해하며,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봐야 합니다. 그 ‘평균’이라는 기준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면 어떨까요?
토드 로즈(Todd Rose)가 쓴 『평균의 종말(The End of Average)』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2015년 출판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수백 년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평균’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역사적·과학적 근거로 밝혀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개개인성(individuality)’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교육·직장·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합니다.
저자 소개 —
낙오자에서 하버드 교수로
저자 토드 로즈의 인생 자체가 이 책의 핵심을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ADHD 판정을 받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은 “나중에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입을 모았고,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평균주의적 시각으로 그의 미래를 예측했다면, 결론은 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들을 부양하면서도 야간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계속한 그는, 마침내 하버드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는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지성, 두뇌 및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를 여기까지 이끈 것은 평균보다 높은 점수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하는지를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 바로 자신의 개개인성이었습니다.
평균의 시대 —
어떻게 우리는 평균의 노예가 되었나
지금 우리가 사는 ‘평균의 세계’는 세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19세기 벨기에의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입니다. 그는 원래 천문학자였는데, 별의 궤적을 측정할 때 쓰던 '평균법'을 아무런 검증 없이 인간에게 그대로 가져다 붙였습니다. 수천 명의 군인 가슴둘레를 측정해 평균을 내고, 그 값을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라고 선언했습니다. 평균에서 벗어난 개인은 자연의 오류이자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프랜시스 골턴이 ‘등급’이라는 개념을 추가했습니다. 평균보다 높으면 우수하고, 낮으면 열등하다는 가치 판단이 더해진 것입니다. ‘평균’이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칼날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가 이 사상을 산업 현장에 접목시켰습니다. 그는 공장 작업의 각 공정을 표준화하고, 어떤 직원이 그 자리에 오더라도 동일한 방식으로 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직원 개개인의 특성이나 아이디어는 불필요했고, 오히려 방해 요소였습니다. 이 테일러주의는 이후 학교 교육으로까지 침투했습니다. 교육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모든 학생을 하나의 표준 커리큘럼으로 가르치고 성적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학교는 산업 사회에 필요한 일꾼을 찍어내는 또 다른 공장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는데, 교육의 틀은 여전히 19세기 공장 논리 위에 서 있습니다.
평균주의의 이론적 오류
— ‘노르마’는 없다
에르고딕 스위치의 함정
토드 로즈는 평균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에르고딕 스위치(ergodic switch)’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이는 “집단에서 측정한 통계 데이터를 개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라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이 성립하려면 단 하나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집단 구성원이 모두 완전히 동일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인간이 똑같은 복제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당연히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교육, 의학, 심리학, 경영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평균주의는 이 불가능한 가정을 아무런 검증 없이 사용해 왔습니다.
미공군의 실험 — 평균적인 조종사는 없었다.
책에서 인상적인 사례 중 하나가 미국 공군의 실험입니다. 1950년대 초, 미 공군은 전투기 조종 사고가 급증하자 원인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연구자 길버트 대니얼스는 4,000명 이상의 조종사 신체 치수를 10가지 항목으로 측정하고 각각의 평균을 계산했습니다.
이 10가지 치수에 모두 해당하는, 즉 완벽하게 ‘평균적인 조종사’가 몇 명이나 존재했을까요?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신체는 제각각으로 들쭉날쭉했습니다.
문제는 조종사들이 아니었습니다. 평균을 기준으로 설계된 조종석이 문제였습니다. 공군이 조종석을 개인 맞춤형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자, 사고율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서 1만 5,000명의 젊은 여성 신체 치수를 측정해 만든 ‘평균적 미국 여성’ 노르마(Norma)에 가장 가까운 여성을 찾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결과는 단 한 명도 9가지 체형 조건 평균에 맞는 여성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균적인 인간’이라는 존재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개개인성의 3가지 원칙 —
나를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
평균주의의 허구를 무너뜨린 저자는 이제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이야기합니다. 바로 ‘개개인성의 3가지 원칙’입니다.
원칙 1. 들쭉날쭉의 원칙
인간은 다차원적인 존재이며, 한 가지 척도로 전체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체격을 비교할 때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다리 길이 등 여러 차원이 있다면, “누가 체격이 더 크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논리가 지능, 재능, 성격, 창의성에도 적용됩니다. 수학을 잘한다고 국어도 잘하는 것이 아니고, 리더십이 있다고 분석력도 높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거의 모든 특성은 여러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차원들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평균주의는 이 복잡한 다차원성을 단 하나의 숫자로 압축합니다. 그 순간 나머지 무수한 차원들은 사라집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딜로이트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이미 등급 중심의 인사평가 시스템을 폐기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들쭉날쭉한 인간의 특성을 단일한 등급으로 환원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원칙 2. 맥락의 원칙
인간의 행동과 성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사람은 원래
외향적이야”, “저 직원은 원래 게을러” 같은 판단은 대부분 한두 번의 관찰에서 나온 것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특성’과 ‘상황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출됩니다. 집에서 조용한 아이가 학교에서는 활발할 수 있고, 직장에서 꼼꼼한 직원이 집에서는 느슨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중인격이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는 뜻입니다.
맥락의 원칙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기보다, “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라고 물으라고요. 맥락을 무시한 판단은 불완전합니다.
원칙 3. 경로의 원칙
어떤 목표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며,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고유한 경로가 있습니다. 평균주의는 ‘빠른 것이 우수한 것’이라는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정해진 표준 경로를 평균보다 빨리 통과하면 우등생이고, 늦으면 열등생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합니다. 발달에는 사다리가 없다고. 사다리가 아니라 그물망이 있을 뿐이라고. A→B→C→D의 순서로 배우는 것만이 올바른 학습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A→C→B→D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D에서 시작해 역순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토드 로즈 본인이야말로 가장 극적인 증거입니다. 고등학교 중퇴자가 하버드 박사가 되기까지의 경로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평균 없는 세상을 향하여
이미 변하고 있는 기업들
코스트코, 모닝스타 같은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표준화된 역할을 부여하는 대신, 각자의 개성과 강점에 맞는 역할을 배치했습니다. 직원이 시스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직원에게 맞춰지는 구조였습니다. 그 결과 테일러주의를 고수하는 경쟁사들보다 월등히 높은 성과를 냈습니다. 개개인성의 존중은 단순한 '착한 경영'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교육 혁명
저자가 제안하는 교육 혁명의 핵심은 획일적인 커리큘럼을 ‘모듈화’하여 개개인에게 맞는 학습 경로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 개혁보다 더 즉각적인 변화는 우리 일상 가까운 곳, 가정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평균으로 평가하지 않고 개개인성으로 바라보는 것, 아이의 성적표 대신 빛나는 면을 먼저 찾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시작됩니다.
평균의 종말이 시작되는 곳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표준화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지금, 인간의 진짜 경쟁력은 ‘남들과 똑같되 조금 더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고유한 조합, 즉 들쭉날쭉하고 맥락에 따라 빛나며 독특한 경로로 성장해 온 개개인성에 있습니다.
『평균의 종말』은 거창한 사회 개혁 선언문이기 전에, 지금 당장 내 일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평균으로 재지 않는 것, 아이의 성적표보다 아이의 빛을 먼저 보는 것, 직원을 등급 대신 고유한 강점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평균의 종말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됩니다. 당신이 평균보다 낮은 그 무언가는 당신의 결핍이 아니라, 당신의 개개인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개개인성이야말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의 진짜 강점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