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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 이수호

이수호 뮤지션·뮤직비디오 감독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15학번

지금 대한민국에서 핫하다는 뮤지션들은 이수호 동문과 작업한다. 제이홉부터 CL, 우원재, 새소년, 소금까지. 3년 차에 접어든 상업 뮤직비디오 감독이 일궈낸 진취적인 성과다. 영상에 사인을 하듯 이수호 동문만의 스타일로 독특한 영상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 그 세계가 궁금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멕시코로 폴짝 떠난 청개구리

‘해’! 하면 안 하고, ‘하지 마!’ 하면 하는 청개구리. 이수호 동문은 어렸을 적 자신을 청개구리 같은 아이로 표현했다. 청개구리에게 부모님의 걱정과 근심은 늘 따라붙는 세트 메뉴 같은 것. 사춘기를 겪던 열다섯 살, 이수호 동문은 아버지가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경상남도 창원에서 멕시코 몬테레이로 이주하게 된다. 한국인과 동양인이 있는 국제학교에 다녔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도 있겠지만 매번 그러기에는 조금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국 가요를 좋아하는 멕시코 친구 프랭크와 친해졌고 프랭크는 어느 날 이수호 동문을 집으로 초대했다.
“프랭크가 자신이 만든 음악을 들려줬는데 재미있어 보이는 거예요. ‘프랭크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 건 없지’라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어 봤어요.”

처음 만든 음악 장르는 힙합.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자신이 찍은 비트에 랩을 얹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랩 실력은 영 소질이 없었는지 래퍼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고 한다. 사교육도, 학원도, 학업 스트레스, 광랜도 없는 멕시코에서의 생활. 이수호 동문은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즐겁고, 재미있게, 열심히 음악을 만들었고 사운드클라우드에 곡을 올렸다.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 했던 열아홉 살에는 한국에 가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가 그때 살짝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 부모님에게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이 대학에서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생산적인 시간이 될 거라고 저를 설득하셨죠. 그러던 중 국민대학교에 영상디자인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멕시코에서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었는데 제 음악의 뮤직비디오도 만든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민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에 입학했죠.”

음악을 따라 영상으로 그리고 뮤직비디오

스무 살이 된 이수호 동문은 이번에는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오전·오후에는 전공 공부를 했고, 오후부터 그다음 날 아침까지는 음악 작업을 했다. 처음 만든 뮤직비디오는 키드밀리의 뮤직비디오였다.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키드밀리를 알게 됐고, 뮤직비디오 작업 의뢰를 받아 만들었는데 그만 폭망했다.
“키드밀리 형이 안 유명했을 때(웃음), 그러니까 <쇼미더머니>에 나가기 전에 만든 앨범의 뮤직비디오가 망하는 바람에 세상에 빛을 못 봤고요. 두 번째 뮤직비디오가 제 데뷔 앨범 <Entertain>에 수록된 <We Make Noise, Not Music>이에요.”

▲ 이수호 <We Make Noise, Not Music> 뮤직비디오

<We Make Noise, Not Music> 뮤직비디오는 영상디자인학과의 카메라 기술 수업 과제로 만든 작품으로. 이수호 동문이 할머니가 입원한 요양병원을 방문하고 나서 느낀 감정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과제를 발표했을 때 반응이 어땠냐면 교수님, 동기들 모두 약간 ‘응?’ 이런 반응이었어요. 카메라 기술 수업인데 카메라는 많이 안 쓰고, 애니메이션으로 영상을 만들었거든요. 저랑 마음이 맞는 몇몇 팀원과 같이 작업했는데요. 수업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뭐 만족합니다!”
이수호 동문은 영상디자인학과에서 영화스럽지 않은 영상을 배울 수 있어 수업이 재미있었고, 학과에서 만난 재능 있는 동기, 선후배와 함께 연락하며 지금까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학부 기간 음악과 학업을 병행한 것은 고단한 시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그리고 4년간의 학부 생활 중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이수호라는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어 움직이기보단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창작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음악 작업을 하느라 밤새워서 학교 간 날이 대부분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어딘가로 가는 생활은 딱 학부 때만 하고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졸업할 때는 음악 작업을 좀 더 열심히 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않게 영상 작업 일이 먼저 잘 풀렸어요.”

영상이 앞서고 있지만 마음은 늘 음악

이수호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소금&드레스의 <My taste>로 상업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했다. “음악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소금 누나가 작업을 의뢰했어요. 당시 보수를 받으며 영상을 찍어본 적이 없어 마음에 큰 부담이 됐지만 이제 막 졸업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작업이 들어오든지 간에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My taste>가 운 좋게도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다양한 뮤지션과 작업할 기회가 생겼죠.”

▲ 소금&드레스 <My taste>

이수호 동문은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은 순간 사랑을 강조하며 쓰러지는 뮤지션을 보여주거나(소금&드레스 <My taste>) 악플로 실컷 두들겨 맞은 래퍼가 순백의 가면을 쓰고 악플러를 향해 말하거나(우원재 <Used to>) 창작자와 감상자가 프레임을 넘어 교감하는 순간(새소년 <자유>)을 담아내기도 했다.

▲ 우원재 <Used to>

▲ 새소년 <자유>

또 매력과 능력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뮤지션(CL <Spicy>)과 기념비적인 성공을 거둔 후 성장과 정체를 고민하는 뮤지션(제이홉 <방화>, <MORE>)도 연출했다. 음악을 만들고 있어 그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들이 지닌 능력을 이수호 동문만의 선명한 시그널로 잘 표현해주고 싶다고.

▲ CL <Spicy>

▲ 제이홉 <방화>

“사람들이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해요. 어떤 사람은 징그럽고 불쾌하다고도 하는데요. 저는 뜬금없고, 낯선 방식 중 하나라고 여기고, 그것이 꽤 멋있게 보여요.”

▲ 이수호 <Worship From Elsewhere (Feat. 장기하)> 뮤직비디오

졸업 이후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 않고 상황에 따라 뮤직비디오를 작업했고, 틈틈이 음반도 만들었다. 작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Monika>는 2022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 후보에 올랐다. 과연 50-60살에도 음악과 관련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음악에 빠졌던 그 순간처럼 마음이 이끄는 데로 작업하고, 업계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일하고 싶다.

▲ 이수호 정규 2집 <Monika>

“올해 상반기까지는 뮤직비디오 작업을 열심히 했으니 지금부터 하반기까지 제 음악 작업만을 해볼 생각이에요. 졸업 이후에 열심히 일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재작년과 작년은 저축할 여유 없이 팍팍했는데 올해는 다행히 규모가 큰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작업해서 제 음악만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와 시간이 생겼어요.”
스스로 걸어 들어간 음악이라는 세계. ‘굶어 죽을 순 없다’라고 각오하며 바짝 날이 선 채로 성장통을 겪고 나니 이제는 한결 차분하고 여유 있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 본인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밝히는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좋은 비는 때를 알아 봄이 되니 내리네’라는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처럼 올여름과 가을, 겨울을 지나 내년 봄에는 이수호 동문에게 음악의 비가 촉촉하게 내리기를. 낯선 자극과 극적인 대립, 불쾌함을 상쇄하는 B급 유머도 잊지 않고 챙겨 온다면 ‘역시 이수호야’라고 사람들은 즐거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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