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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다 도심 속 상생과 소멸의 풍경 염천교수제화거리 사운드스케이프展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문화디자인랩 이민,나일민 교수, 이주현,이화연 학생

한쪽에서는 옛 건물이 허물어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새 건물이 지어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변화는 익숙하다. 서울로7017에서 북쪽으로 300m 떨어진 염천교수제화거리는 서울역 일대의 흥망성쇠를 목격하며 수제산업의 부흥과 쇠퇴를 맞이했다.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수제화 산업의 한복판에서 오늘도 묵묵히 생업을 이어가는 구두 장인들.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공간ㆍ문화디자인학과 문화디자인랩 학생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소리풍경으로 담았다.

염천교수제화거리의 소리를 찾아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공간ㆍ문화디자인학과 문화디자인랩 8명 학생들(작가_이주현·이화연·황새연·김지인·라지인ㆍ허보경, 스태프_심서영·홍유진)이 지난 1월 21일부터 26일까지 서소문로 중림창고 커뮤니티홀에서 <블루아워: 염천교수제화거리 사운드스케이프展>(이하 블루아워)을 열었다. 블루아워는 해 뜰 녘과 해 질 녘의 박명이 지는 시간으로, 재개발과 도시재생의 경계에 놓인 염천교수제화거리의 이야기를 사운드프케이프로 담은 기획 전시다. 2015년부터 국민대학교 LINC+사업단이 지원했던 ‘염천교수제화거리 활성화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추진되었다.

▲ 블루아워 전시 포스터
▲ 서소문로 중림창고 커뮤니티홀에서 열린 블루아워 전시회

염천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화 시장이다. 1925년에 가죽 밀거래 시장이 생겼고, 한국전쟁 이후 수제화거리의 모습을 갖춰 1970~198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현재는 서울역 일대 재개발 사업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도시재생의 길을 걷고 있다.

▲ 이민 교수(왼쪽)가 전시 기획을 나일민 교수(오른쪽)가 사운드스케이프 이해와 비평을 담당했다

“문화디자인은 지역의 장소성을 토대로 지역의 역사와 전통, 공동체적 삶을 담는 문화콘텐츠를 디자인하고, 나아가 기획, 비평, 경영, 교육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융복합적인 분야로 국내 처음으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개설했어요. 이번 전시 역시 공연(연극) 전공의 이혜경 교수님, 공간디자인 전공을 한 저(이민 교수), 그리고 문화(예술) 이론을 전공한 나일민 교수가 함께 협업한 교육의 사례로 볼 수 있고요, 참여한 대학원생들의 학부 전공 역시 각기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이런 다양한 전공과 관심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 매개체가 바로 염천교라는 지역인데요. 사실 염천교수제화거리는 이교수님께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부터 문화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연구와 교육의 현장으로 삼았던 곳으로,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적 실천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블루아워의 전시를 기획한 이민 교수는 이혜경 명예교수가 염천교수제화거리를 생업을 이어온 장인들과 쌓아온 견고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 터전 위에서 장인들과 수월하게 소통하며 이번 블루아워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시재생 그 의미를 넘어, 보이는 것 말고 느끼는 것

블루아워는 사운드스케이프 전시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풍경을 의미하는 landscape의 합성어로 ‘소리풍경’이라고도 말한다. 인공음(음악, 자동차 소리, 기계 소리 등)부터 자연의 소리, 인간의 소리 등 각양각색 소리를 포함하는 소리환경을 일컫는다.

▲블루아워 전시 메이킹 영상 이미지

▲허보경 학생의 <틈(Aperture)>

“우리는 그 어떤 감각보다 시각에 주로 의존하잖아요. 하지만 시각중심주의는 대상과 나를 분리시키고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갈등과 폭력, 소외를 야기하기도 하죠. 오히려 시각이 아닌 다양한 우리의 감각들, 그 중에서도 청각을 통해 염천교수제화거리를 접근했을 때 도시가 처한 문제와 위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진실되게 귀 기울이고 디자인적으로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운드스케이프 이해와 비평을 지도한 나일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관점을 확장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 결과 블루아워 전시에는 소리 산책자, 창작자, 소리 보존가의 관점에서 표현한 여섯 명 학생들의 일곱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김진희 학생의 <소리원(園)>(왼쪽) 라지인 학생의 <Daybreak: 아침을 깨우는 소리>(오른쪽)
▲이화연·황새연 학생의 <ASMR 디스크: 염천교 수제화 장인의 소리기록>

학생들은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재개발 운명에 처한 도시의 삶과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소리로 끌어안았다. 이주현 학생은 염천교수제화거리가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소리,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프로젝트 전 과정의 소리들을 아카이빙하였고, 라지인 학생은 사람들이 일상의 아침을 여는 소리를 들려줬다. 허보경 학생은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소리들을 수집해 일지를 작성하여 랩실에서 직접 사용하던 책상에 스피커를 설치해 소리를 공유했다. 이화연·황새연 학생은 새벽 수제화 상점을 여는 장인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장인의 작업 소리를 ASMR로 담았다. 김진희 학생은 염천교수제화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그들에게 노래로 위로를 건네는 라디오 DJ가 되었고, 일대에서 채집한 소리 종자를 이미지로 표현하며 균형 있는 소리 환경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 창작자 관점에서 구두 장인의 소리를 담은 이화연 학생(왼쪽)과 수집가 관점에서 도시의 소리를 채집한 이주현 학생(오른쪽)

이주현 학생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온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한다. 이화연 학생은 블루아워 전시가 끝났지만 문화디자인랩에서 장인과 이 도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게 된다고 한다.
“건물을 바꾸고 간판을 교체하는 방식의 도시재생은 자생력이 약해요. 문화디자인랩은 도시재생 그 이상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그것을 기록·수집· 저장함으로써 사람들이 이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염천교수제화거리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어요. 다음 학기에는 염천교수제화거리에 관한 책을 만들 예정이에요. 염천교수제화거리에 대한 문화디자인랩의 기록들이 모여 도시에 자생력을 더하는 자원이 되고, 꼭 필요한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된다면 이곳에서 수제화를 맞추고, 근처 카페에 들러 음료 한 잔 마시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그것이 이 지역의 역사이고 문화이며 이 지역이 세월을 버티는 힘이 되는 거겠죠.” 다음 학기 문화디자인랩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이민 교수의 대답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아간 블루아워 전시와 매우 닮아있다.

문화디자인랩 학생들은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려는 그 찰나의 시간을 소리로 담아내며 쇠락의 길을 걷는 염천교수제화거리에 무한한 가능성을 실어주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변곡점을 걷고 있는 이 도시를 활기 넘치는 굴곡의 방향으로 ‘영차’하고 소리 내며 당겨본다. 그들이 내는 응원구호에서 희망이라는 음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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