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으로 세상을 만나고, 패션으로 세상을 읽어낸다
디자이너 이상봉의 열정을 듣다
한글을 사랑한 디자이너, 우리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1975년 패션디자이너로 첫 입문한 이후, 브랜드를 세우고, 후배 디자이너 양성에 힘쓰는 현재까지,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또한, 현재는 패션이라는 영역에 갇히지 않고,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시대라고 피력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소양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그를 강남의 이상봉 쇼룸에서 만났다.
민간 외교의 시작은 한글 패션에서 시작
이상봉 디자이너의 패션쇼는 이따금 방송을 통해 봤던 기억이 있다. 아니 더 구체적인 기억으론 아주 오래전, 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이상봉 디자이너의 모습을 처음 접했더랬다. 한글을 테마로 패션쇼를 준비하던 중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그 패션쇼에 모델로 도전하는 내용이었는데, 꽤나 진지하게 패션쇼에 임했던 예능 스타들의 긴장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11월에 중국 광저우 패션위크 오프닝 초청 패션쇼를 하게 됐어요. 그 준비 때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고요.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에서 평창 올림픽을 테마로 패션쇼를 열었는데, 당시에도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사드 문제로 분위기가 굉장히 험했거든요. 그런데도 많은 호응을 해줘서 이번 쇼에서는 중국을 대표하는 치바이스(중국 청 말에서 현대까지 활동한 화가. 근대 문인화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며 중국화의 거장이라 불린다.)의 예술 세계와 동양적인 테마로 잡았는데 준비할게 더 많더라고요.”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과 북핵 문제까지 생각하면 중국과의 관계는 쉽게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오리무중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보니 민간 외교의 힘이 더욱더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어느 때보다 그의 행보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사실이다. 패션을 통해서 한중 관계가 조금이나마 유연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사실 그의 민간 외교의 시작은 그 유명한 한글 패션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오래전 파리에 진출하면서 대한민국을 어필하는 가장 좋은 방법, 또 한국 패션이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해왔다. 그러다 2005년, 한글을 패션에 접목시키며 장사익 선생의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한글 작품들로 파리에서 유례없는 히트를 친 후, 한글을 모티브로 한 의상을 연이어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세계인에게 한글을 입히겠다” 호언장담하던 그의 거침없는 열정은 파리에 이어 미국과 러시아까지 이어지며 ‘이상봉의 한글 옷’은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정도였다. 한글뿐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자신의 패션에 절묘하게 접목시켜오던 그는 언제나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창작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
젊은 청춘에게도 뒤지지 않는 도전과 열정
지난 8월 말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는 대한민국 미래 패션인재 발굴을 위한 ‘고교패션 컨테스트 with 이상봉’이 열렸다. 올해로 두 번째 열린 이번 컨테스트는 고교 학생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한 작품을 무대에 선보이는 형식인데, 디자이너 이상봉은 모든 학생들의 멘토를 자청하며 끝없는 도전을 또 이어나갔다.
“제가 패션을 접할 때엔 그 어떤 기본 바이블이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정보 얻는 것도 쉽고 소통도 원활하다보니, 어린 학생들의 흡수력과 감각이 너무도 훌륭하더라고요. 잘만 이끌어준다면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단 생각으로 컨테스트를 만들게 되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창의성과 독창성, 완성도가 우수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학생들과의 교감으로 인해 되레 자극을 받고, 좋은 영감도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곤 뒤이어 9월 22일 남양주체육문화센터에서 열린 ‘2017 남양주 슬로라이프 국제대회’ 오프닝 행사. ‘환경, 건강, 힐링의 도시 남양주’란 주제로 이색 패션쇼 ‘5R 패션쇼’를 열었던 그는 이 쇼를 통해 청년 디자이너들과 함께 친환경과 재활용 소재 등을 활용해 새로운 소재의 디자인 의상을 선보였다. 5R은 올해 슬로라이프 국제대회의 기본 방향으로 새로 쓰고(Renew), 다시 쓰고(Reuse), 줄여 쓰고(Reduce), 모아쓰고(Recycle), 오래 쓰는(Return) 것을 의미한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천천히 조금은 느리게 살자’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뭐든 ‘빨리 빨리’ 앞만 보고 내달리면, 우리 곁의 자연이나 환경 등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요. 한 템포 쉬어가면서 놓쳤던 것들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었던 작업은 그래서 더 의미 있던 것 같아요. 빠르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삶의 강약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야 새로운 환경과 시스템에 맞서 적응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요.”
믿고 다가가는 만큼 마음껏 디자인하는 세상
국민대학교도 지난 9월 22일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을 학내 본관과 야외 전시장 등에서 대대적으로 열었다. ‘미래를 향한 도전, 국민이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페스티벌은 국민대가 그 동안 펼쳐온 혁신적 교육성과는 물론,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한 다양한 행사도 선보였다.
“알파고 때문인지 몰라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는 인공지능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세돌 기사를 알파고가 이겼기 때문인데,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패션계도 큰 충격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의 영역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우려나 조바심도 흘러나오는 분위기인데, 저는 크게 불안할 필요가 없단 생각입니다. 국민대학교 페스티벌처럼 다짐하고 준비하고 그리고 함께 걸어가야 할 운명체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을 현명하게 바꾸고 재정비할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니까요.”
인공지능과 인간의 융합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면, 패션은 다른 문화와의 융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그는 오래전부터 이 작업을 다양하고 꾸준하게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유명 핸드폰 제품의 이상봉 에디션을 시작으로 행남자기의 그릇과 프랭클린 플래너 커버디자인, 금호건설의 아파트 벽지와 문, 담배 등의 디자인프로젝트 또한 활발히 진행시켜왔기 때문이다.
"옛 것을 지키는 것도 우리 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방법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방향도 늘 시도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를 패션과 융합해 나라안팎으로 알리는 일입니다. 내가 믿는 만큼, 내가 다가가는 만큼 세상은 마음껏 새롭게 그릴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것이니까요. 국민대학교 학생 여러분들도 자신을 열정과 능력을 믿고 새로운 시대에 적극적으로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젊음은 부딪치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