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이 해외에 나가서 가장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국 신문이다. ‘세상에 널린 게 영어인데 아무 영자 신문이나 읽으면 되지 까다롭게 구느냐’라고 하면 영국인들은 입을 모아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사실 속으로는 ‘British Paper’가 다른 어떤 영어권 나라에서 발행되는 신문보다 가장 우월한데, 자기네들은 그것에 길들여져 있어서 다른 신문은 눈에 안 들어온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 현상에 대해서 영국 신문이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고, 또 영국 신문의 의견이라면 들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신문들은 보통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민들에 의해서 창간됐고, 그랬으니까 철저하게 시민을 위한 신문으로 남는다는 간단한 공식이다.
 
 
 
영국의 신문 산업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하향세를 겪고 있다. 판매 부수는 감소하고, 신문 판매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올랐으며, 조간 신문의 대표 격인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 같은 신문들은 무가지로 전향했다. 영국의 인터넷 속도가 쓸 만해진 것은 불과 얼마 전, 이제 여기 사람들도 일간지를 사는 대신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뉴스를 읽는다. 신문 외에도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많으며 그 중에서도 신문이 가장 느린 매체라는 건 슬프지만 사실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라면 일단 싫어하고 보는 2010년의 영국인들도 뾰족한 수 없이 인터넷에 의지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지만, 일요일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디언(The Guardian)>의 일요일 판이 <옵저버(The Observer)>라는 신문이고 <타임즈(The Times)>의 일요일 판이 <선데이 타임즈(The Sunday Times)>인데 이 일요일자 신문 두 개를 사면 무게가 3킬로 정도 나간다. 가격은 평일보다 1/3 정도가 비싸지만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안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알차다. 두꺼운 메인 신문 외에도 스포츠, 비즈니스, 문화 예술 리뷰, 뉴스 리뷰 등이 따로 따로 분리돼 있고 신문사에서 특별 기획한 도톰한 문화지, 패션지, 남성지, 여행지가 잡지 형태로 최소한 두세 개씩 부록으로 딸려 나온다. 가끔씩 신간이라든가 유명인의 인터뷰 모음집(아돌프 히틀러의 인터뷰 모음이 나온 적도 있었다)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고 운이 좋을 때는 영화 DVD라든가 머그컵, 케이크 같은 것도 받을 수 있으니, 평소에 신문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알짜배기 거래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다.

영국인들이 부르는 완벽한 일요일 풍경이란 이렇다. 전날 밤 과음으로 인해 숙취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도 오래 입어서 자기 바디 라인대로 모양이 잡혀 있는 스웨터만 하나 걸치고는 일단 동네 식당에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로 배를 채운다. 느끼한 음식으로 속이 좀 달래지면 슈퍼에 가서 선데이 페이퍼를 사서는 근처 카페로 향해 자리를 잡은 다음,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한 잔 시키고 이들이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자국의 신문을 펼쳐 드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갖는 신문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정말 대단하다. 영국인들은 자국 저널리즘을 세계 최고로 꼽으며 스스럼없이 그 공명정대함에 대해 의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 자신감에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신문사가 ‘저희는 공정합니다’라고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신문사를 지지하는 것이다. 한 현상에 대해서도 신문마다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전국 신문부터 동네마다 있는 지역 신문들까지 정해 놓은 수준 이상인 양질의 기사를 보장하니 꾸준하게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은근히 부럽다.

물론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에 쓰레기만 찰 것 같은 신문들도 부지기수다. ‘타블로이드지’라 불리는 그런 신문들은 보통 연예인들이 ‘누구랑 자고 누구랑 헤어지고, 또 누구랑 헤어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잤고, 이번에는 또 다른 누구랑 잤다’는 식의 내용 천지라 읽다 보면 ‘나만은 평생 안 자리라(?)’는 결심이 생길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온통 잤다는 얘기뿐이다.
타블로이드지의 대표 격인 <썬(The Sun)>은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유니언잭 깃발을 첫 페이지에 띄우며 철저히 때려 부수자는 헤드라인을 싣기도 했다. 이처럼 <썬>은 현(現) 정부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따르는 신문인데, 정치 성향이 심하게 현 정부로 쏠려 있어서 대다수가 비난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이 신문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다.
영국인들은 ‘나는 그 신문을 읽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의견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한다. 이 신문은 매호 ‘3페이지’에 선정적인 가슴 노출 사진을 싣기로도 유명하다.

이밖에도 영국을 대표하는 전국 신문으로는 <데일리익스프레스(The Daily Express)>,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 <가디언(The Guardian)>,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데일리메일(The Daily Mail)>,
<메트로(Metro)>, <미러(Mirror)>, <모닝스타(The Morning Star)>, <스타(The Star)>, <텔리그라프(The Telegraph)>, <타임즈(The Times)>(이상 알파벳 순)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디언>은 많은 영국 젊은이들이 선택하는 일간지이다. 대학 매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이
<가디언>이라는 것은 젊은 층에서의 그 인기를 잘 보여준다. 사회주의적 성향이 분명하고, 신문의 편집 디자인이나 콘텐츠가 다른 신문들에 비해 신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가디언>이 ‘우리가 사회를 한번 뒤바꿔보자’ 하며 외치는 매체라면, <FT>는 ‘영국 지성의 화룡점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높은 신문이다. <FT>는 'Financial Times'의 약자로 영국 대학생들에게는 필수적으로 구독해야 하는 신문(이긴 하지만 모두 읽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대학생 필독도서를 다 읽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이다. 더 이상 <FT>를 금융, 경제 전문 신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졌다. 문화와 예술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면서 이 신문도 문화와 예술 소식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때문에 디자인과 학생들이나 순수미술을 하는 학생들도 많이 읽는다. 그러고 보면 <FT> 주말 판의 경우, 경제나 금융 얘기는 전혀 없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기사로 채워져 있을 정도다.
이 신문은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쇼퍼홀릭>이라는 팝콘 소설에도 나왔었다. 영국인 주인공이 평소에는 읽지도 않으면서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꼭 <FT>를 옆구리에 끼고 참석하는데, 주인공은 이 신문의 복숭앗빛 컬러도 마음에 들고, 펼쳐 놓고 있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봐서 기분이 좋다고 했을 만큼 정말로 <FT>는 지적인 인상을 강하게 주는 폼 나는 신문이다.
 
 
요즘은 재생용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복숭앗빛도 약간 바래긴 했는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가난한 동네에서는 <FT>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동네라고 해서 지식에 화룡점정을 찍고 싶은 사람이 없을 리가 없겠지만, 사실은 정말로 없는 모양인지 가난한 동네 가게에서는 <FT>를 절대로 안 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런던의 가장 부자 동네와 가장 가난한 동네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이 흥미로운 차이를 극명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집을 나서서 좌향좌를 하면 런던에서 가장 부자 동네인 ‘블랙히스(Black Heath)’, 우향우를 하면 가장 가난한 동네인
‘루이샴(Lewisham)’이 나오는데 <FT>를 사기 위해서는 좌향좌를 해야 한다. 루이샴으로 가봤자 타블로이드지 나부랭이 정도밖에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이 여기에도 있는지 그 흔해 빠진 <빅이슈(Big Issue)>조차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빅이슈>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국에서도 유명한 목욕용품 회사인 바디숍(The Body Shop)의 설립자가 1991년에 만든 주간지다. 홈리스에게 구걸 대신 잡지를 팔게 해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자는 좋은 취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루이샴처럼 가난한 동네에는 도와줄 사람도 없을 테니 홈리스들은 많아도
<빅이슈>를 파는 홈리스들은 없는 것이다. 아무튼 <빅이슈>는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 운동 중 하나로 손꼽히며 지난 1월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바디숍의 CEO가 왕실로부터 작위를 수여 받기도 했다. 거리에 서서 <빅이슈>를 들고서 파는 사람들은 모두 홈리스들이다. 이들은 <빅이슈>를 85펜스(약 1500원)에 사서 1파운드 70펜스(약 3500원)에 팔아 이윤을 남긴다. 못 먹어서 말라빠진 개와 함께 더러운 담요를 나란히 덮고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듯한 표정의 일반적인 홈리스를 상상하면 안 된다. <빅이슈>를 파는 이들은 대체로 활기차며 싹싹하고 친절하다.

영국엔 수많은 타블로이드지도 있고 <썬>처럼 정부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고 사는 신문도 있지만 대부분의 신문들은 극 사회주의거나 약간 사회주의거나 중립을 지키면서 사회 현상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패러디한다. 이에 대하여 런던의 한 대학에서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를 연구하고 있는 한 박사는 영국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집안 좋고, 인물 좋고, 학벌 좋고, 부자인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까지 ‘쿨’해 보인다는 걸 잘 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콤플렉스가 많은 나라에서는 쉽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영국인들이 자국 신문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문마다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와 메인스트림 파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현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시각이 사이좋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나란히 공존하는 것이다.
 
 
영국의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며 언급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바로 ‘플리트가(Fleet Street)’다. 이곳은 쉽게 말해 영국의 삼청동쯤 되는 거리다. 영국 관광의 필수 코스인 ‘세인트폴(St. Paul) 성당’을 등지고 그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영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어째 영국인들은 사소한 것에 자주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플리트가다. 그저 기웃거리기만 하면서 내려와도 한 시간쯤은 금방 지나갈 정도로 볼 게 많다. 구불구불한 작은 거리 구석구석에 오래된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데 예상 외로 해외 관광객들이 별로 없다. 관광객들은 아마도 세인트폴 성당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와서는 사진을 몇 장 찍고 ‘자, 이제 다음 장소로!’ 하면서 왔던 버스나 지하철을 다시 타고 냉정하게 돌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성당이야 원래 유명하지만 성당 주변에 있는 구멍가게 같은 상점들도 자세히 보면 의미가 깊다. 역사가 짧게는 이백 년, 길게는 오백 년이 넘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때문에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자신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느낌이 든다. 이렇게 영국의 전통 있는 거리 풍경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보니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조니 뎁’이 주연으로 나왔던
<스위니 토드>, 얼마 전 개봉했던 <셜록 홈즈>가 대표적이다.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에서 런던의 거리를 묘사할 때 많이 활용되고 있다.

전통도 전통이지만 이 거리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바로 이곳이 영국 저널리즘(National Press)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1500년대에 인쇄소가 이 거리에 몰렸고 1702년에 세계 최초의 일간지인 <데일리 쿠란트(Daily Courant)> 신문이 창간된 이후부터 대부분의 영국 신문과 소식통들이 이 거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신문사들과 방송사들은 차츰 ‘와핑(Wapping)’으로 이사를 갔고 2005년에 마지막으로 로이터가 철수하면서 플리트가에는 더 이상 어떤 뉴스 회사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거리는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저널리즘과 미디어의 중심으로 남아 있다.
 
 
 
런던에서 미디어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처지라 운 좋게 세계적으로 저명한 저널리스트 필립 나이틀리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선데이 타임즈>의 특별 기자였고 영국 내 최고 저널리스트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1960~19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주요 업적으로는 냉전시대 KGB, CIA등의 스파이 리더들과의 인터뷰, 세기의 스캔들이라고 알려진 ‘Profumo’ 사건 전모 공개, 신생아에게 치명적인 장애를 수반하는 ‘thalidomide’를 개발한 제약회사 고발, 영국의 최고 부자 중 하나인 ‘Vestey’ 가문이 ‘8천8백만 파운드(약 1천6백억 원)’의 세금을 피해간 것을 파헤쳐서 영국의 세법까지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월 말, 런던의 한 대학에서 필립 나이틀리와 함께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그가 세미나를 통해 강연한 주요 내용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신문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독자들의 반응, 의견들을 재빨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널리스트의 기사와 댓글이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저널리스트들은 사건을 파헤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은 댓글에서 그칠 뿐, 그게 기사의 힘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기사와 댓글은 반드시 분리해서 대해야 하며, 신문은 저널리즘의 중심에서 정보 제공자(informants)가 편하게 접근하여 기사 거리를 줄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예전 플리트가에서는 밀고자들(Whistle Blowers)이 잠깐만 걸어도 3~4개의 신문사를 돌며 정보를 흘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반나절이 걸려서 와핑까지 가야 한다. 그렇지만 와핑에 도착했다고 해도 신문사에서 일개 방문자를 과연 들여보내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는 세미나 말미에 독특한 질문을 받았다.
“만약 국가경쟁력이 꽤 높은 어떤 한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의 저널리즘이 국제 무대에 내세울 만한 게 못 된다면, 그렇지만 나라는 그냥 저냥 잘 굴러가고 있다면, 그런데도 훌륭한 저널리즘이라는 게 그 나라에 꼭 필요한 것인가?”
저명한 저널리스트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신문이 있을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만약 신문의 질이 성에 안 찬다면 불매운동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혹시 불매운동을 해도
안 된다면 어떡하냐고 재차 물었다. 신문사의 우두머리들을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표 신문사가 누구의 소유냐고 했다.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럼 좀 어렵겠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한국을 떠나 그리워하는 것은 수십 가지가 넘겠지만 그 중에서 신문이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버터구이 오징어와 김말이 튀김 같은 걸 그리워하는 한국인은 주변에 많지만 <동아일보> 그리워요, 누구 <중앙일보>,
<조선일보>를 본 사람 없나요, 애타게 찾는 한국인은 아직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버터구이 오징어와 김말이 튀김에 밀리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필립 나이틀리에게 한 질문은 대한민국 얘기였다. 그 유명 저널리스트는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꼭 한국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알면 알수록 꽤 괜찮은 나라인데 왜 해외에서는 유독 정체성이 희미해지는지는 참 모를 일이다. 박지성도 있고 김연아도 있는데… 승부욕 하나는 세계 일등이니, 다만 저널리즘에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게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겨울 방학을 맞아 런던에 여행 온 한국 배낭여행객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여행이 알찼을 거라 확신한다. 머무는 동안 영국 신문을 읽어 볼 시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영국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니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영국 신문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임에는 틀림없으니까.



글 / J-Min Ahn (www.jminahn.wordpress.com)
사진 / <이브닝 스탠더드>사진은 Evangelina Guerra (www.EvangelinaGuerra.com)


*FT_ ‘Young British Still Up For Old Media’의 J-Min Ahn은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문화와 창조예술 경영자 석사과정(MA in Creative & Cultur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Media and Communication Pathway) 전공이다. 어렸을 때 살았기 때문에 영국에 대해서는 구석구석 잘 아는데도 이 나라는 알면 알수록 한국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고 신기한 곳이라는 걸 느낀다. 이 색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이상하게도 우리나라가 가진 어떤 분명하고 확실한 가능성을 떠올리는데 어떤 가능성인지, 뭐가 그렇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곧 책으로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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